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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변화를 꿈꾸는 '중공업 명장', 문미석 직장을 만나다

samsungshi 2014. 5. 5. 00:35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되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비전이 없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일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남보다 일도 두 배로 열심히 했습니다. 덕분에 2004년 중공업 명장의 반열에도 올랐습니다. 일을 할 때는 어떻게 하면 쉽고 안전하게, 그리고 같은 시간에 남들보다 빨리 작업할까를 고민합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변하지 않는다'는 철저한 원칙으로 일하고 있는 문미석 직장(LNG선공사부설치3과)을 만나봅니다.


 선박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문미석 직장

 
문미석 직장은 1986년 10월 창원 기전사업부(제1공장)로 입사했습니다. 입사 후 그는 산업용보일러를 제작하는 발전사업부에서 TIG용접을 맡았습니다. 당시엔 처음 접한 일이라 재미도 있고, 일을 배우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네요. 1991년에는 배열회수보일러(HRSG)의 튜브블럭을 설치하는 기술을 제안해 '중공업 기술상 은장'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0년에 조선소로 전배를 오게 됐는데요. 그때 문 직장이 맡은 업무는 LNG선 화물창 펌프타워를 제작하는 일. 당시 사업부가 정리되는 힘든 시간을 겪은터라 맡은 일에 대한 애착은 더 강해졌습니다. 파이프 용접을 담당했던 문 직장은 2002년 당시 최대 해양 프로젝트였던 '사할린프로젝트'에 참여해 누구보다 월등한 물량을 작업하며 그 한(恨)을 풀었다고 합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2004년에 문 직장은 중공업 명장에 선정됐습니다. 같은해 LNG선공사부로 부서를 옮긴 그는 현재 LNG선 화물창 MEMBRANE 설치 및 용접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하게 일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창원공장 시절의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니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창기에 거제도는 거의 황무지였어요. 장평동은 주로 논이었고, 포장이 안되어 비가 오면 발이 푹푹 빠지기 일쑤였죠. 장비도 부족했지만, 그때는 없으면 없는대로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일했습니다. '인생 새옹지마' 라는 말이 지금 생각해보면 딱 맞죠.˝

 

인터뷰 중인 문미석 직장

문미석 직장에게 중공업 명장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그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했고, 그것을 알아봐 준 사람들 덕분에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문 직장은 일을 할 때 꼭 지키는 원칙이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변화하자 그리고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다른사람도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늘 변화하려 애쓰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이 그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합니다.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되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비전이 없습니다. 일을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쉽고 안전하게 그리고 같은 시간동안 남들보다 빨리 작업할 수 있는지를 늘 고민하며 업무에 임했습니다. 일하는 방법을 남들과 다르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이길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덕분에 치공구를 직접 개발하고 작업에 응용하여 생산성을 올리게 됐습니다. 그 결과가 명장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문미석 직장

문 직장은 현장에서 원가절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데요. 아주 작은 것이라도 더 쓸 수 있는 자재가 버려져 있으면 다시 사용하기 위해 모아두고, 담당 부서원들에게도 항상 자재 낭비를 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이렇게 작은 것부터 아껴쓰는 것이 원가 절감의 시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내가 있고 회사가 있다고 생각하면 애사심이 없어집니다. 회사가 있고 내가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역지사지'라고 하지요. 내 주변에는 나말고 다른 사람도 있다는 생각도 필요합니다.˝

어느덧 입사 29년차를 맞이한 문미석 직장. 그는 이제 또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명장입니다. ˝잠을 자는 이는 꿈을 꾸지만, 깨어있는 자는 꿈을 이룬다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준비된 자만이 행운과 기회를 거머쥔다고 하죠. 여러분도 끊임없이 도전하시기 바랍니다.˝